푸른 대나무 삿갓, 초록 비옷, 비스듬한 바람과 가랑비 속에서도 돌아갈 필요 없어
Encyclopedic
PRE
NEXT
비가 그친 뒤, 하늘은 더 높고, 작은 마을도 더 높고, 나무들도 더 높아졌다.
방금 지나간 번개는 하늘이 몸을 숙여 눌러버린 셔터 소리였을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은, 아마도 방금 현상해서 아직 마르지 않은 그 사진 한 장일 것이다.
모든 잎사귀는 빛을 머금고 있고, 모든 잎사귀는 몸에 꼭 맞는 비단옷을 걸친 듯하다.
구슬 같은 시간들이 잎사귀 위에서 하나하나 굴러떨어져 길가의 풀숲으로, 마당의 청석판 틈새로, 그리고 비가 그친 후 향기로운 치자꽃이 가득한 황혼 속으로 굴러들어간다. 비록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마음속에는 큰 울림이 있다. 맑은 차 한 잔을 들고, 먹빛 먼 산을 바라보며 마시면 살짝 취한 듯한 기분이 든다.
오후에 막 핀 호박꽃은 화장이 번져, 작은 노란 얼굴이 주름져 축 늘어져 있었다. 작은 바람이 불고 또 불자, 그 꽃잎은 다시 쫑긋 세워져 마치 덩굴에 달린 미니어처 축음기처럼, 언제라도 태엽을 감아 삐걱거리며 노래를 부를 것 같았다. 부를 노래는 부모님이 좋아하는 월극일까?
말리던 옷들은 모두 집으로 도망갔고, 텅 빈 빨랫대 위에는 귀걸이 한 방울 같은 물방울과 늦게 찾아온 달빛과 산들바람만이 남아 있다.
노천 물통은 가득 찼고, 먼 길을 달려온 빗물은 통 안에서 마음껏 쉬며, 손에 하늘 한 조각을 받치고 있다.한 마리 잠자리가 살짝 젖은 물통 가장자리에 발끝을 세우고, 작은 거문고처럼, 가늘고 길게 울려 퍼지는 선율이 물과 하늘 위에 흐른다.
모든 먼지는 땅속으로 돌아가고, 짙은 녹색과 연한 녹색이 땅 위로 번져나간다. 보이지 않는 꽃들이 가지 사이의 들판에 산책하듯 흩어져 있다.
연기가 은은히 피어오르고, 공기는 은은한 달콤함을 머금으며, 풀과 나무에서 향기가 난다. 하얀 쌀과 검은 숯, 쇠냄비와 장작불, 네모난 탁자와 긴 의자. 단순한 삶, 소중한 평온.
비 내리는 들판에 가지 않은 게 정말 후회된다. 짙은 녹색의 목련꽃과 함께, 푸르른 덩굴과 함께, 빗물의 은혜를 받고, 그러면 나도 반짝반짝 빛났을 텐데.
PRE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