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왜 폭죽을 터뜨릴까? 폭죽 터뜨리기 유래
Encycloped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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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을 말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폭죽을 떠올린다. 폭죽이 언제 발명되었는지는 아마도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겠지만, 문헌 기록에 따르면 설날에 폭죽을 터뜨리는 풍습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당나라 시대에는 폭죽을 '폭대(爆竿)'라고도 불렀는데, 아마도 긴 대나무 막대를 마디마다 태워 연속적으로 폭발음을 내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남창 시인 라오허(来鹄)의 시 <초춘(早春)>에 나오는 "새해 달력이 반쯤 펼쳐졌는데, 작은 정자에는 아직도 폭대 재가 쌓여 있다(新历才将半纸开,小亭犹聚爆竿灰)"라는 구절은 당시 설날에 대나무 막대를 태우던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북송 시대에는 이미 종이로 화약을 감싼 폭죽이 등장했으며, 단발과 연발로 구분되어 '폭장(爆仗)'이라 불리다가 후에 '폭죽(鞭炮)'으로 바뀌었다. 설날에 폭죽을 터뜨려야 하는 이유를 말하자면, 아마도 많은 이들이 '연(年)'이라는 괴물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알고 있는가? 설날과 마찬가지로 '섣달그믐날(除夕)'이라는 명칭 역시 같은 전설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전설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 '석(夕)'이라는 요괴가 있었다. 이 녀석은 특히 예쁜 소녀가 있는 집을 노려 밤마다 그녀를 해치고, 해친 후에는 먹어치워야만 만족했다. 백성들은 이를 극도로 증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칠랑(七郎)이라는 사냥꾼이 있었는데, 그는 힘이 엄청나고 활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그의 활 솜씨가 워낙 뛰어나서 그가 기르는 개마저 매우 사나워, 어떤 맹수라도 감히 맞서 싸울 정도였다. 칠랑은 백성들이 '석'에게 괴롭힘당하는 모습을 보고 그를 없애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 개를 데리고 '석'을 찾아 여기저기 헤맸지만, 아무리 찾아도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석'은 평소 낮에는 나타나지 않고 해가 지면 나와 사람을 해치다가 한밤중이 되면 사라져 버렸고, 그가 어디에 사는지도 아무도 몰랐다.칠랑은 '석'을 찾아 일 년을 헤맸다. 그날은 이미 섣달 그믐날, 그는 한 마을에 이르러 사람들이 모두 즐겁게 설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다. 칠랑은 생각했다. 이 마을은 크고 사람도 많으며, 처녀들도 많다. 어쩌면 '석'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상의하며, '석'이 가장 소리를 무서워한다고 말하고, 해가 진 후에는 잠들지 말라고 당부했다.집에 두드리는 소리가 큰 물건을 많이 준비해 두고, 조금이라도 소리가 나면 힘껏 두드려서 '석'을 겁주어 쫓아내자고 했다. 그날 밤 '석'은 정말로 나타났다. 한 집에 쳐들어갔다가 바로 발각되었다. 그 집 사람들은 즉시 냄비와 항아리를 두드리기 시작했고, 이 집이 두드리자 마을 전체가 함께 두드리기 시작했다. '석'은 겁에 질려 사방으로 도망치다가 결국 칠랑에게 막혔다.칠랑이 사냥개를 풀어 쫓자, '석'은 칠랑이와 개와 싸우기 시작했다.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은 손에 든 물건을 더 세게 두드렸다.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하자 '석'은 버티기 힘들어 도망치려 했지만 뒷다리가 사냥개에게 물려 놓아주지 않았다.칠랑이 틈을 타 활을 당겨 화살을 쏘자, 한 발에 '석'은 죽고 말았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음력 12월 30일을 '섣달 그믐날'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날 밤, 집집마다 새해를 맞이하며 불꽃놀이를 하며 불길한 기운을 쫓고 행복과 길조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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